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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3회 반도 전시기획 공모전 대상 수상작 전시회 Ⅱ
2023-09-14 ~ 2023-10-23

2023 반도 전시기획 공모전 '지정 주제' 부문 대상 수상작 전시회

 

*전시 연계 프로그램 : 아티스트 토크  23. 10. 08 (일요일) 14:00~16:00 / 반도문화재단 아이비 라운지 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 누구나 선착순 25명

<아래 QR 코드로 신청 가능>

가족 지지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편리해지는 세상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일상의 사물들은 모두 흔한 것으로 치환되며 배경적 정보가 되고 있다. 그 안의 우리 역시 매일 변화한다. 한편,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렇기에 매일 변하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있다면, 아침에 눈을 뜨면 만나는 벽과 방바닥, 포근한 이불, 밥을 먹는 식탁, 안락한 의자와 같은 일상의 사물들이다. 지속하는 형태의 사물들은 변화하는 우리에게 안정적 환경을 제공하고, 가족의 축적된 이야기와 시간을 머금은 채 잊었던 서사와 흐릿해졌던 진실을 건네고 있다. 이렇게 일상의 것은 가족을 지지하는 지지체가 된다.

 

《가족 지지체》는 너무 흔하기에 놓쳐온 일상 속 가족의 사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실과 콘크리트를 주된 재료로 사용하는 두 작가, 이수지, 이진영 작가의 예술 세계를 빌려 서로 겹쳐보며,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삶의 기초가 되어주는 의복과 주거의 물질성에 집중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상의 사물과 관계 맺기를 독려한다. 두 작가의 물질(작품)에 둘러싸여 가족의 물리적 지지체들을 감각하고 또 알아보고, 그 존재 의미를 일상의 것들로 확장하길 바란다.

 

글_임휘재 독립 큐레이터

 

 

이수지__extruding 01__ 81 x 81 cm_ 종이, 실_2022 (detail_02)

 

 

이진영__a Piece of Love (6)__ 20 x 18 cm (framed- 33 x 31 x 5 cm)_콘크리트, 철망_2022

 

예술, 물질, 일상, 시간, 가족, 콘크리트, 실-단어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아래의 빈칸에 넣어 읽어보세요.

 

어느 하나 달라진 건 없다. 울려야 할 알람은 제시간에 울리고, 늘 막히는 출근길은 여지없이 차로 빼곡하다. 어제도 그제도, 지난주에도 함께 했던 사람들과 오늘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네모난 화면 속 네모난 창을 통해 친구들의 오늘 하루를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다시 집 앞에 서 있다. 내일도 반복될 하루를 미리 경험한 것과 같은 익숙한 기묘한 마음과 함께. 개인의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일과들은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수없이 반복하며 쌓아온 일상의 논리이다.

 

그러나 반복적인 시간이 잇따르는 [       ] 에도 지극히 예외적인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를테면 여느 날과 달리 유독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을 보며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부지불식간에 나를 다른 장소, 다른 시간으로 데려다 놓기도 한다. 이런 순간은 대개 필연적이라기보단 우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우연한 사건은 그저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순간을 붙잡기 위해, 그 순간 느낀 떨림을 내 안으로 품기 위해 다시 여행을 가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신도시 아파트 단지 안에서 펼쳐지는 지금 이 전시도 일상의 연속을 일시에 넘어버리는 어떤 느낌의 지대로 우리를 이끄는 [        ] 적인 경험을 전달한다.

 

이진영, 이수지 작가의 작업으로 구성된 전시 《가족 지지체》는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어떤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전시는 사물이 가지는 물질성에 주목하여 시각예술 작품이 품고 있는 미적인 즐거움과 가족의 삶을 지지해 주는 안식처로서 일상적 사물들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보고’, ‘보여주는’ 시각예술에서 작품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물질로서 만들어진다는 것과 그것의 재료가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사물들의 재료와 연결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두 작가가 작업의 소재로 활용하는 콘크리트와 실은 우리가 사는 집을 짓고 매일 입는 옷을 만드는 기초적인 재료라는 점에서 평범한 소재가 작가의 손을 거쳐 작품이 되는 과정과 그 작품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은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디에 놓고 온지도 모른 채 자꾸 잃어버리는 우산처럼 잊고 잃어버리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가득 차 있다. 출근길 갑자기 끼어든 차에 불같이 화를 내기도, 간식으로 먹은 초콜릿의 달콤함에 황홀함을 느끼기도, 귀여운 밈(meme)을 보며 웃음 짓기도 하며 하루 종일 우리의 감정과 신체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무수한 변화 속에 놓여있다. 쉼 없는 변화 속에서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로서 일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연속성은 물리적 실체를 지닌 채 우리 주변을 지키는 [        ] 적 지지체로부터 만들어진다. 가끔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오가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물들은 마치 [         ] 처럼 서로의 삶에 안정감을 더해준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다른 사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우리 집 부엌의 식탁과 식당의 테이블, 방 안의 옷장과 사무실의 옷걸이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전시는 그 차이를 개인이 한 사물과 함께해 온 ‘ [        ] ’에서 찾는다. 사물과의 우연한 마주침을 무의미한 스쳐 지나감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간에 배치하고 자신의 삶 속으로 기입하여 곁에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들 때 비로소 사물에 이야기가 스며든다. 이때 일상의 사물은 우연에서 벗어나 내 삶에 들어왔지만 ‘소유’처럼 폐쇄된 관계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완결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삶을 재발명한다. 마치 매일 같은 침대에서 매번 다른 꿈을 꾸는 것처럼. 어제와 같은 의자에 앉아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처럼. ‘지지체’라는 제목은 우리의 관계가 완성된 울타리가 아니라 서로 기대어 삶을 통과하는 멈추지 않는 과정 중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진영 작가의 콘크리트 작업은 가볍고 손쉽게 사용되는 이모지(이모티콘)를 실체화해 고정함으로써 우리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네모난 화면을 가볍게 두드려 생성되는 이모지들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건네는 글을 대신해 간편하게 마음을 전한다. 생각이 죽어 말이 되고, 말이 죽어 글이 된다는데, 글이 죽어 만들어진 이모지에 우리의 생각이 온전히 담길 수 있을까. 작가가 [         ] 속에 박제해 놓은 이모지들은 마치 유물과도 같은 예술 작품으로 영원한 시간 속에 남게 된다. 작가는 일순간에 사라질 이모지들을 영원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것들을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제안한다. 각자 다른 웃는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같은 표정으로 웃는 디지털 세계에서 하트 이모지 역시 우리가 수없이 반복하며 쌓아온 일상의 논리의 한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표상으로 표현되기에는 우리 삶의 풍경은 다채롭다 못해 변화무쌍하다. 그럼에도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불꽃 튀는 순간이 찾아오듯이, 콘크리트 속 심장을 닮은 이모지를 바라보다 보면 효율이라는 명목 아래 잘려나간 마음도 읽을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지는 않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딱딱한 화면을 길게 눌러 만질 수 없는 디지털 공간 속에 만들어진 이모지가 다시 눈앞에 보이는 묵직한 작품으로 다가왔을 때 재빠르게 유통되고 사라지는,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과 손쉽게 만들어진 마음마저 되돌아보게 된다. 쉽게 만들어진 마음일지라도 시간을 두어 오래 곱씹다 보면 혹여나 그 의미가 새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바쁜 일상 속에서 굳이 시간을 들여 일상을 되돌아보고 그 의미를 재해석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비일상적인 이벤트일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어떤 예술 작품은 각박한 마음을 녹여 일상의 매 순간이 우연적이고 예외적인 순간들과 별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뚱맞은 생각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수지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매 순간의 과정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작업의 결과물로서 전시되는 작품이 아닌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작가 본인만의 방법을 통해 손수 [         ] 을 엮고 나아가 그것을 엮는 도구를 직접 제작하여 작품으로 내세움으로써 작업 과정이 곧 작품이 된다. 이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노동 행위에서 그 무엇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우리의 매 순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매 과정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결괏값을 미리 염두에 두고 정해 놓은 설계를 따라가더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용법을 재설정한다. 시간을 더 쏟기도 포기하기도 혹은 완전히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언젠가 다다를 결말에만 집중한다면 지나간 시간은 사소하고 별거 아닌 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연속되는 우리의 일상이 단 몇 개의 장면들로 잘려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과정에 주목해 한다면 잘려 나간 장면들이 다시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고,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떨림이 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제안하는 바대로 눈앞의 결과와 그것의 의미보다는 지나온 과정들과 지나가는 순간들에 주목해 본다면, 어쩌면 언젠가 닿을 거라 기대한 막연한 미래를 지금의 일상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지 기대하게 된다.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당연히 꽤나 애를 써야 하는 일이다. ‘가족’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알 수 없는 애틋한 마음도 함께 해온 시간과 앞으로 함께할 시간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가족 지지체》는 이진영, 이수지 작가의 작업을 눈으로 보고 직접 손으로 어루만지며 두 작가가 쌓아온 시간에 관객의 시간이 더해지는 전시이다. 지금 이 순간을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라 말하고 싶다. 시작은 항상 이어짐을 전제로 한다. 이 우연한 만남이 일상의 반사적 행동의 진부함을 깨고, 그것이 계속 이어져 예외적인 순간들이 예외적이지 않을 만큼, 삶이 예술적인 순간들로 가득 차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일상을 나누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나눌 그 가슴 벅찰 시간을 기다리며.

 

글_강부민(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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